시국 이야기로 치열한 이 게시판을 눈팅만 하다가

첫 글로 올린다는 글이 시국과 관계 없는 이야기라 민망하네요. ^^;;


이범준이라는 전직 법조기자가 "헌법재판소,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"란 책을 썼는데

내용 자체가 87년 헌법개정 이후의 현대사를 짚어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.

현실이 시궁창이고 어쩌면 헌법재판소라는 기구가 한 결정들도 쓰레기 같을지도 모르겠지만,

그래도 나름의 논리들이 있고 조금씩 사회의 변화에 맞춰간다는 점에서 희망을 갖게 합니다.

다음 헌법재판소 구성원들은 현 대통령의 임명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암울하긴 마찬가지입니다만,

그래도 보수적인 성향이라고 해서 임명받는 사람들도 대법관, 헌법재판관이 되면 변하기도 하더군요.

(누구였는지는 기억이 안납니다만...)


더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고,

한국 사회에 대한 한줄기 희망을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에 추천드립니다.


그래24에 올린 내용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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87 년 헌법이 개정되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많이 이뤄졌다고는 하지만, 헌법재판소가 없었다면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. 이 책을 읽고난 내 답은 "아니다." 사람들은 법원에서 법률로 재판받지 헌법으로 재판받지 않는다. 대법원은 정치에 휘둘려 왔다. (책에 나오는 헌법위원회의 업적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.) 법률에 희생당한 억울한 사람들에게 법률을 구제해줄 만한 곳은 헌법재판소 밖에 없는 것이다.

 

이 책은 법이라는 논리적인 주제를 쉽게 쉽게 풀어나간다. 각 판결의 논리적인 요점을 콕콕 찝어서 왜 이런 판결이 나왔는지를 설명한다. 아마 이 책을 보고나면 법관에 대한 불신이 쌓일지 모른다. 똑같은 헌법을 보는 법관들이 왜 이리 의견이 다른지. 하지만 그런 의견의 다양성을 보며 한줄기 희망 또한 피어오른다.

 

헌법재판소는 민의에 바탕을 둔 추상적인 헌법을 가지고 법률을 다루기에 민의를 의식하게 되고,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. 이 책은 정치적인 헌법재판소의 시작부터 그 곳에서 내려진 수 많은 결론들의 과정을 되짚어보고 있다. 그리고 일반 판례 서적들에서 간과할 수 밖에 없는, 헌법재판관들의 성향과 정치적인 배경에 집중한다. 수 많은 헌법재판관들을 인터뷰하고, 그들의 말들과 역사적 사실을 짜맞추거나, 때론 대질수사를 하듯 일치하지 않는 점들을 발견해내곤 한다. 아마 발로 뛴 저자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30개의 주제로 꿰어진 구슬들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.

 

이 책은 공기만큼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한 기관의 업적과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.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의 권위를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.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판결이지만, 그래도 사회의 변화에 다른 기관에 비해 유연한 모습은 희망을 갖게 한다. 그래도 헌법재판소에 대한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, 앞으로 법관만이 아닌 더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헌법재판소에 참여해 한국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는 헌법재판소가 되었으면 한다는 점이다. 세상이 법관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닌데,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.